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4.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
    Christianity 2019. 8. 30. 15:06
    반응형

    4.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네 번째 교리는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이다. 성경은 구원을 중생(重生, 거듭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중생이란,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산 결과, 중생한 자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새로워진다.
    우리는 중생을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라고 본다. 이 진리는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고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져 있다는 성경 진리를 전제로 한다. 로마서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죽은 영혼은 스스로 살아날 수 없고 하나님의 활동에 협력할 수도 없다. 죽은 자는 중생 시 스스로를 도울 수 없다. 중생에 있어서 그는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불러내실 때 그가 주의 음성에 협력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에스겔이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향해 대언할 때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그것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겔 37장).
    그러므로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 활동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중생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중생에서 사람의 의지는 협력적 원인이 될 수 없다. 물론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이 일을 하 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들을 중생시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심을 증거한다.
    에스겔 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 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5, “물과 성령으로(엑스 휘다토스 카이 프뉴마토스 ejx u{dato" kai; pneuvmato") 나지 아니하면.” ‘성령으로’ 라는 말은 성령께서 중생의 원인자이심을 보인다.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 지라.” 고린도후서 4: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에베소서 2:1, “허물들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들을 살리셨도다.” 에베소서 2:4-5,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 .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중생시키실 때 주로 복음의 말씀을 사용하신다. 따라서 성경은 말씀을 중생의 수단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야고보서 1:18,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 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유아들의 경우는 다르나, 성인들의 경우, 중생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과 동시적이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 편에서는 오직 전도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중생을 영혼의 지배적 성향의 변화라고 본다(벌코프). 중생 사건에서 하나님의 영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 속에 새 생명의 원리를 심으셨고,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산 결과, 중생한 자의 영혼의 성향, 의향, 즉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진다. 그는 새 마음을 받는다(겔 36:26; 엡 4:22-23). 비록 옛 죄악성이 그의 인성에 남아 있어 자주 실수하기도 하지만(롬 7장), 그의 영혼의 이 새 성향은 의를 지향하고 의만 지향한다. 그것은 다시 불경건과 부도덕의 죄악성에 굴복할 수 없는 새 생명의 원리이다(요일 3:9).
    중생의 증거는 회개와 믿음이다. 중생한 자는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돌이키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고 의지하게 된다(요일 2:29; 3:10; 4:7; 요 1:12-13; 요일 5:1).

    반응형

    'Christianit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론  (0) 2019.08.30
    5. 성도의 견인(堅忍)  (0) 2019.08.30
    3. 예수 그리스도의 제한 속죄  (0) 2019.08.30
    2.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0) 2019.08.29
    1. 사람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  (0) 2019.08.23

    댓글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벧전1:8)